함장을 만나다
함장을 만나다 많은 이들에게 벤 에인슬리는 올림픽 역사상 가장 성공한 요트 선수로 기억된다. 그는 시드니, 아테네, 베이징, 그리고 런던 올림픽 까지 4회 연속 금메달 리스트였다. 올림픽 첫 출전이었던 애틀랜타 올림픽 때는 은메달을 수상했지만, 별로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니 넘어가자. 벤은 세계 요트 챔피언 대회에서 11번 우승했고, 올해의 요트선수상을 4회나 수상했다. 요트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OBE(대영제국 4등 훈장), CBE(대영제국 훈작사), 기사 작위까지 받았다. 그렇다. 그에게 주어진 한 다발의 상들과 찬사들이, 그에게 발송된 수많은 편지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 특이한 스포츠 슈퍼스타 자신은 자신의 메달들은 아내의 오래된 메이크업 가방에, 숱한 트로피들은 지하실 어느 박스에 처박아 놓는 한편, 수여받은 작위의 증표를 마지막으로 언제 봤는지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면 어떨까? 이 사실을 알아야 비로소 여러분은 요트에서 타고난 실력을 가진 이 남자, 어쩌다 보니 내 남편이라고 내가 부르고 있는 벤이라는 사람에 관한, 더 완전한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스포츠 저널리스트로서 일하며, 지난 수년간 수많은 스포츠 선수 들을 인터뷰해오고 있는데, 이들 모두에게 공통적인 특징 하나를 발견했다. 여러분에게 흥미로울지도 모르는데, 그건 바로, 벤을 포함 하여 이들을 움직이는 건 승리욕이 아니라 패배에 대한 두려움 이라는 사실이다. 내 남편은 결코 지지 않겠다는 데 목숨을 건다. 내년 벤은 자신의 역사상 가장 큰 모험에 도전해보려 한다. 세계 에서 가장 오래된 스포츠 트로피인 아메리카 컵을 최근 결성된 요트 팀인 랜드로버 바 Land Rover BAR와 함께 고향인 영국으로가져오려는 것. 이 일이 엄청난 일임을 그는 잘 알고 있다. 지난 165년 역사상 그 어떤 영국 팀도 아메리카 컵에서 우승을 차지하지는 못 했다. 첫 출전한 팀이 기존 우승자인 오라클 팀 Oracle Team USA의 손아귀에서 이 상을 훔쳐 올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우리는 지금 다른 사람이 아닌 벤을 이야기하고 있고, 그의 단어에 패배란 없다. 지난번 아메리카 컵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본 대로 적어보면 이러하다. 이 대회가 시작될 무렵인 2013년 여름은 벤과 내가 사귄 지 몇 달 안된 시점이었다. 난 뉴욕 폭스 스포츠에서 일하고 있었고, 벤은 팀 오라클 USA를 지휘하는 샌프란시스코 ‘B’ 보트에 소속되어 있었다. 그는 한 곳에 자리 잡는 데 능숙하지 못했는데, 그래서 우리는 장거리 통화와 방문을 종종 하며, 어떻게 하면 그가 현 위치를 가장 잘 지키고 유지할지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곤 했다. 벤은 분명, 그의 믿기 힘든 올림픽 경력이 끝나가고 있고, 오라클 보트의 주장 자리를 지미 스피씰에게 내주고 2진에 머물러야 한다는 사실에 힘겨워하고 있었다. 그는 벤치에 앉아 있었고 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이런 상태에서 레이스는 시작되었고, 아메리칸 팀으로서는 사태가 더욱 나빠졌다. 5점 차이가 나자, 래리 앨리슨 감독은 변화를 꾀하기에 이른다. 그날 밤 벤은 전화로, 자기가 투입되었다고 전했던 것이다. 벤이 투입된 뒤, 스포츠 역사상 가장 멋진 역전극 중 하나라고 불리는 사건이 일어났다. 8-1로 뒤지던 오라클 팀이 9-8로 역전하며 아메리카 컵 우승을 차지했던 것. 벤을 투입하겠다는 래리 앨리슨의 결정은 궁극적으로 우리 두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버렸다. 오퍼를 받았고, “최근 탁구 게임에서 내가 그를 이기고 있었을 때 분위기가 갑자기 어두워졌다.” GEORGIE AINSLIE 우리는 빠르게 생각해야만 했다. 당시 우리는 미국에서의 삶을 즐기고 있었고, 영국 언론에서는 우리의 관계가 눈부시 게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보도했지만 여전히 우리의 관계는 초기 단계였다. 게다가 미국에서 나는 직장인으로서 절 정기가 시작되던 시점이었다. 아마도 나는, 다음 단계에 무엇을 할지 우리가 오래 또 고심을 하며 생각했다고 말해야 할 듯 싶다. 하지만 생각보다 일이 쉽게 풀려 버린 것이다. 결국 운이 좋았다. 둘 다 같은 것을 원했는데, 이런 것이다. 함께 있고, 뿌리를 내리고, 가정을 이루고, 우리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해가는 것. 영국으로 돌아가 랜드로버 바를 세우는 일은, 월급을 저축하며 미국 내에 머무 는 것보다 늘 더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미국에 머무는 것만이 길 이라고 생각했었다. 그 일로부터 한두 해 뒤인 지금, 우리는 포츠마우쓰에 있다. 35 회 아메리카 컵에 출전해,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던 팀인 오라클 팀 USA에 맞서 싸워 이기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오직 스포츠만이 이런 식의 스토리라인을 쓸 수 있고, 물론 이 동화는 우리가 아메리카 컵을 고향으로 가져오면서 끝을 맺게 될 것이다. 벤이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 그가 이 과정에서 얼마나 성장했는지 알아차릴 수가 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오직 자신에게만 집중하면 그뿐인 싱글 플레이어에서 140명이 넘는 사람들을 다루는 팀 빌더 30
이자 선수, 또 리더로 변신하는 일에, 힘들여 적응해야만 했던 사연도 나는 잘 알고 있다. 사람들은 흔히 그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 같은 성격 을, 즉 물에서는 강렬한 힘을 보이는 경쟁자이지만 물 밖에서는 겸손 한 신사가 되는 면모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시간이 지나면서 이 두 면모는 변형되고 있다. 물 안에서도, 밖에 서도 자신감이 강해지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 경쟁자는 이제는 어디에나 있다. 지난주 휴가 때 벤과 난 탁구 게임을 했는데, 내가 계속 앞서가자 게임의 분위기가 어두워졌다. 먹구름이 몰려왔고, 눈동자가 뒤집혔다. 유치한 핑퐁 게임에서 아내가 이기는 건 완전히 기분 좋은 일이라는 그의 항변에도 불구하고, 경기 중 그의 표정은 내게, 그가 실은 반대 상태에 있음을 알려주었다. 나로서는, 누군가 와 함께 사는 법을 배웠고, 또 그의 복잡한 성격을 사랑한다. 단지 솔 직하고 단순하기만 해서는 벤이 성취한 것에 도달할 수는 없을 것이 며, 그를 어떻게 내조해야 할지가 아내로서 나의 새 고민거리다. 아래 오른쪽부터 시계방향: 2013년 아메리카 컵 우승 때의 벤 에인슬리, 벤, 조지 에인슬리 그리고 벨라트릭스,그리고 은메달을 단 에인슬리 (희귀 사진) 11월, 집과 국가를 세 번째로 옮기며 버뮤다 행 비행기를 탔을 때. 벤이 34회 아메리카 컵에서 어떻게 우승했는지와 35회 대회 우승에 어떻게 매진할지, 두 시점의 차이가 그때보다 더 큰 순간은 없었다. 이번에는 그에게 아내가, 새 아이인 벨라트릭스가, 그리고 두 애완견인 비글스와 진저가 따라왔다. 가족이 그를 건전하고 유지 시켜주고, 힘겨운 상황이 나타날 때 (대회가 점점 다가옴에 따라 분명 그러할 텐데)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트림이 필요한 갓난아기가 없듯, 골칫거리에서 잠시 해방되려고 닥스훈트( 독일산 개)를 데리고 요트를 타는 일 같은 건 없는 법. 하지만 그가 늘 요트 경기만을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라 여기는 건, 순진한 생각일 것이다. 집에서 조금이라도 자유 시간이 생기면, 벤은 서재로 곧장 달려가 문을 닫고는 지난 경기를 반복 시청하는데, 그와 그의 팀이 어떻게 했으면 다르게, 더 잘 했을지 연구하기 위해서다. 또 어떤 때는 책상에 몇 시간이고 죽치고 앉아서 승리할 방도를 분석하고, PHOTO JACK BROCKWAY/HIJACK 평가하고, 걱정하고 또 연구하기도 한다. 세상 모든 근심을 혼자서 짊어지기라도 한 사람처럼 보이는 날이 면, 나는 반은 농담조로 그를 ‘아틀라스’라고 부른다. 사실 그에게 너 무 많은 걸 기대하는 이들이 너무 많다 보니,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 을지 고민하며 그는 불면의 밤을 보낼 때가 꽤 많은 것이다. 벤의 경기를 보면서 앞 일이 걱정되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곤 하는데, 내 대답은 한결같이 ‘전혀’였다. 그가 이기지 못하는 경우라면 걱정될 것 같으냐고 당신이 물어온다면, 글쎄, 그건 또 다른 이야기다. 31